달러 패권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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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패권의 미래
  • 김명현 기자
  • 승인 2020.10.09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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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범 내일신문 편집국장


3~6월 사이 미 연준은 3조달러를 풀었다.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6년 간 뿌린 규모와 같다. 그러나 2분기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32.9%(연율)까지 내려갔다. 73년 동안 집계 중 최악이다. 이 때문에 달러인덱스는 7월 한달 4.1p(97.1→93.0) 떨어졌다. 월간으로는 10년 만에 최대 하락이다. 9월 말 94.6까지 반짝 올랐지만 장기 하락추세에 들어섰다는 분석이 많다.

반면 유로화 가치는 높아지고 있다. 갈등 속의 유럽연합(EU)이 ‘경제통합’을 진전시켰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위기에 빠진 회원국들을 위해 7500억유로(약 1030조원) 규모의 경제회복기금이 조성됐다.

시장 변동성이 극심한 해라는 점만 고려하면 달러의 휘청거림은 대수롭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달러가치 하락이 미국 내부의 혼란스런 상황을 배경으로 진행되면서 달러패권에 대한 의문이 끊이질 않는다.

기축통화 조건은 경제력과 지정학적 파워

기축통화의 첫째 조건은 경제력이다. 기축통화 발행국은 글로벌 교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야 한다. 상대국이 자국 통화로 지급·결제하는 상황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미국의 이런 특성은 과거에 비해 약화되고 있다. 글로벌 GDP와 무역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명목 기준으로 2019년 미국의 글로벌 GDP 비중은 25%다. EU는 21%다. 중국 16%, 일본 6%,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4%, 인도 3%, 한국 1.3%다. 1945년 글로벌 GDP 비중 50%를 차지하면서 2차세계대전 이후 서구 부흥을 이끌었던 ‘수퍼파워’ 미국의 위상추락에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무역과 투자를 달러로 거래하는 가장 큰 이유는 편의성이다. 하지만 미국정부의 제재 일변도 정책 때문에 갈수록 달러 편의성이 줄어든다. 미국은 전통적인 동맹을 비롯한 수많은 국가에 경제제재를 가하고 있다. 개별 시민과 기업 등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미국의 제재에 대한 반발이 만만치 않다. 올해 초 중국 러시아 카자흐스탄 인도 파키스탄 등으로 구성된 ‘상하이협력기구’는 무역과 투자에서 달러 대신 상호 국가의 통화를 적극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런 흐름에 가장 앞서 있다. 지난 5년 동안 중·러 양국의 무역에서 달러 결제 비중은 90%에서 50% 밑으로 급감했다. 러시아중앙은행 자료에 따르면 올 1분기 러시아와 중국의 무역대금에서 달러는 46%, 유로화가 30%, 루블화와 위안화가 24%를 차지했다. 러시아와 EU 무역에서도 유로화 비중이 달러를 거의 따라잡았다.

원유시장에서도 달러독주가 깨지고 있다. 2018년 3월 상하이 국제에너지거래소(INE)에서 위안화 결제 원유 선물시장이 개장됐다. 상하이는 뉴욕 런던에 이어 세계 3위 원유 선물시장이 됐다. 지난해 시장점유율이 6%를 넘었다. 하루 거래량은 약 14만건으로 100만건이 넘는 브렌트유나 WTI엔 크게 못 미치지만 오일 위안화 파워를 무시할 수 없다. 7월 초 영국 브리티시페트롤리엄이 중국에 300만배럴을 납품하며 위안화로 결제했다. INE 개장 후 석유 메이저의 첫 위안화 결제다.

기축통화의 두번째 조건은 지정학적 파워다. 영국은 금융과 산업, 국방 강대국으로서 글로벌 경제통합의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1차세계대전 후 쇠락의 길을 걸었다. 파운드화도 위력을 잃었다. 달러를 전후 질서의 중심으로 올려놓은 건 미국의 경제적 우월성만은 아니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미국의 지정학적 파워가 한몫했다. 미국은 이 파워를 활용해 글로벌 경제의 재통합을 이뤄냈다.

미국 우선주의, 달러 특권적 지위 종말 부를 수도

 달러가 직면한 최대 위협은 글로벌 협력관계를 유지해온 동맹에 대한 미국의 신뢰가 깨지고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이전에도 트럼프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은 글로벌 개방성을 약화시켰다. 국경을 넘어 확산하던 공급사슬은 코로나19로 더욱 위축될 전망이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 따르면 금년 4월 국제 지급거래에서 달러가 43.37%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유로(31.46%) 파운드(6.57%) 엔(3.79%) 캐나다달러(1.79%) 위안(1.66%)이 그 뒤를 이었다. 세계 각국의 달러 외환보유액 비중은 1999년 73%에서 지난해 62%까지 낮아졌다. 위안화 비중은 꾸준히 증가해 2.01%에 달한다.

세계경제에서 역할이 감소했음에도 미국의 존재감은 여전히 압도적이다. 미국이 글로벌 무역의 재구축을 이끈다면 달러패권은 안정적일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반대 방향으로 간다면 달러의 특권적 지위는 종말을 맞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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