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략균 갈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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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략균 갈럼
  • 김명현 기자
  • 승인 2020.10.10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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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의 믿음을 주관하는 ‘꼰대’도 되지 말아야 하지만, 누군가가 내 믿음을 주장하려는 ‘꼰대’에 대해서도 배척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꼰대’라는 말이 예전에는 어르신들이나 학교 선생님을 가리키는 은어였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고지식하고 권위주의적인 사고방식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사람’을 가리켜 ‘꼰대’라고 합니다. 꼰대는 자신의 경험과 주관으로 다른 사람을 쉽게 판단하여 상대방이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조언을 하여 상대방에게 자기의 생각을 주입하려 하는 사람입니다. 꼰대는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꼰대 육하원칙’ 들어보셨지요?
•누가: “내가 누군 줄 알아?”
•언제: “나 때는 말이야.” , “내가 너만 했을 땐”, “내가 젊었을 땐”
•어디서: “감히? 어디서”
•무엇을: “네가 뭘 안다고 그래.”
•어떻게: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왜: “내가 그걸 왜 하니?”
이런 말을 자주 하는 사람은 나이와 관계없이 ‘꼰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의 자신은 어떤 것 같습니까? 꼰대인 것 같습니까? 스스로 꼰대가 아니라고 하는 사람이 꼰대일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꼰대가 되어 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꼰대가 되면 자신만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과 행동 등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늘 불평불만이 가득하여 본인도 힘들고 괴롭습니다. 또 꼰대와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은 더 힘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신을 위해서도,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해서도 꼰대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쓰리고'를 잘해야 한다고 합니다. 첫째는 자꾸 먹어가는 제 나이를 낮추어 젊은 사람과 소통하'고', 둘째는 자신이 잘 나갔던 옛날을 잊'고', 셋째는 남의 인생에 참견하지 말'고'입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도 꼰대가 되지 말아야 하지만 교회와 신앙에서도 꼰대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에서 다른 사람의 믿음에 대해서 꼰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과 같은 위대한 사도도 다른 사람의 믿음에 있어 꼰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의 교인들을 향한 자신의 마음가짐을 밝힙니다.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고후 1:24)”

 여기에 나온 ‘주관하다’는 말은 ‘~의 지배자이다.’, ‘~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다.’, ‘~에 대한 주권을 가지고 있다.’라는 의미입니다. 또 ‘돕는 자’란 말은 ‘함께 일하는 사람’, ‘동역자’ ‘도우미’를 뜻합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주인 노릇, 주님 노릇하는 꼰대가 아니라 고린도 교인들이 기쁨을 누리도록 함께 일하는 도우미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사도바울이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인지 알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야말로 ‘스펙의 종결자’였습니다. 바울은 태어나면서 당시 세계 최강국인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기에 일등시민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이스라엘 최고의 학자인 가말리엘 문하에서 배워 학벌도 좋았습니다. 또한, 바울은 바리새인 가운데 바리새인이었기에 가문과 혈통도 좋았으며 오늘날의 국회의원이나 헌법재판소 재판관과 같은 산헤드린 회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은사도 대단했습니다. 죽은 사람도 기도로 살려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병과 악귀가 떠나갈 정도록 기도의 능력에 있어서 탁월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환상과 계시를 받았습니다. 낙원에도 왔다 온 경험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예수님이 누구신지? 어떻게 하면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예수 믿는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신약 27권 가운데 13권을 기록하여 전해 준 사람입니다. 더구나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개척한 사람입니다. 이런 대단한 바울도 자신이 세운 고린도 교인들의 믿음을 주관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믿음을 지배하는 꼰대짓을 하지 않겠다고 한 것입니다.

 바울과 같은 훌륭한 사도가 다른 사람의 믿음을 주관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다른 사람의 믿음을 지배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대개 다른 사람의 믿음을 지배하려는 사람은 신앙생활 한 지 얼마 안 된 사람보다는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인 경우가 많습니다. 또 나이가 어린 사람보다는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 그동안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의 믿음을 지배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믿음을 지배하려고 들기 쉽습니다.

 그래도 교회에서 다른 성도들의 믿음을 주관할 가능성이 가장 큰 사람은 아마 저와 같은 목회자들입니다. 목회자 가운데도 담임 목사가 성도들의 믿음을 주관하기가 가장 쉽습니다. 이 위험성을 우리 장로교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칼빈도 알고 있었습니다. 칼빈은 고린도후서 1장 24절과 관련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회자들은 사람들의 신앙 양심에 대해서 특별한 지배권을 가지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배자가 아니라 봉사하는 사람이며 돕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원칙이다.”

 한국의 목사들 가운데는 교인들의 믿음을 지배하려고 한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목사라고 해도 교인들의 믿음을 주관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목사라도 교인들의 신앙생활에서 주인 노릇 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제가 신학대학원 다닌 시절, 교수님 가운데 한 분이 한국 교회 목사들은 어디에 가든 자신이 주인공이 되려 한다고 교인들의 돌잔치에 가서도 자신이 주인공처럼 말하고, 교인들의 결혼식장에 가서도 자신이 주인공인 것처럼 행동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나중에 담임목사가 되었을 때 아무 때나 주인공이 되려고 하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목사는 교인들에게 주인행세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목사는 성도들을 주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야 하지 자기의 사람으로 만들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목사는 신앙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지배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목사는 교인들이 실제의 주인이신 주님께 잘 갈 수 있도록 돕는 특급 도우미가 되어야 합니다. 

 목사는 교인들의 믿음을 주관하지 않게 조심해야 합니다. 대개 성도들의 믿음을 지배하려고 하는 목사님들은 일반적으로 “아멘”과 “서원”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설교 말끝마다 “아멘”하라고 강요합니다. “아멘”을 하지 않으면 막 혼내십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를 바랍니다.”라고 대개 ‘아멘’을 강조합니다. 자칭 은사가 충만한 목사님들이 ‘아멘’을 많이 강요하고, 거기에 속한 교회에 다니는 분들이 ‘아멘’을 잘합니다. 말끝마다 ‘아멘’을 잘하는 어느 교회에서 목사님과 권사님들이 심방을 가는데, 앞서 걸어가던 목사님이 방귀를 뽕하고 뀌니까 뒤따라오던 권사님이 “아멘.”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는 팩트 체크는 해보지 않았지만 아마 ‘아멘’을 너무 남발하는 것을 비판한 유머일 것입니다.

 이에 반해 제가 섬겼던 청년부는 ‘아멘’을 거의 안 합니다. ‘아멘’을 하면 꼰대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예배에 익숙한 청년부에 가끔 어르신들이 오셔서 ‘아멘’을 하면 설교한 저와 우리 청년들이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섬겼던 우리 청년들처럼 너무 ‘아멘’을 안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시도 때도 없이 ‘아멘’을 남발하는 경우도 문제입니다. 목사의 말에 장단이나 흥을 맞추듯이 아무 생각 없이 무조건 ‘아멘’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물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아멘’은 중요하지요. 아멘이라는 말은 ‘상대방의 말이나 의견에 동의를 나타낼 때’ 사용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동의를 표할 때 ‘아멘’을 사용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지정의를 가진 인격적 존재로,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아멘’이라고 동의했을 때 우리 안에서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아멘은 중요합니다.

 이처럼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아멘’이라는 말은 중요하지만 이를 강요하거나 아무 때나 사용하게 되면 말의 참뜻을 훼손하게 됩니다. 제가 청년 시절에 대개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어느 집회에서 유명한 말씀 선포자가 평생 독신으로 주님을 위해 헌신할 사람 “아멘”으로 답하라고 부추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몇몇 개념 없는 청년들이 ‘아멘’이라고 답합니다. 하지만 설교자는 몇 명만이 ‘아멘’하는 것에 만족할 수 없었고 더 큰 목소리와 감정을 섞어 주님을 위해 평생 독신으로 헌신할 사람 ‘아멘’하라고 더 강력하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이제 점점 더 많은 청년들이 큰 소리로 아멘을 합니다. 저는 끝까지 아멘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결혼하여 아내 1명과 최악의 조합인 아들, 아들이 있습니다. 물론 결혼을 해본 지금의 저로서는 차라리 그때 ‘아멘’ 했던 것도 나쁘지는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기는 합니다. 아마 제가 그때 ‘아멘’하지 않는 것을 제 아내가 더 아쉬워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때 ‘아멘’을 했으면 정말로 결혼하지 못했을까요? 아마 ‘아멘’을 크게 수십 번 했어도 결혼했을 것입니다. 저는 말씀을 선포하신 분이 독신인 줄 알았습니다. 본인이 독신이기에 저렇게 자신 있게 많은 청년들에게 독신을 강요하신 줄 알았습니다. 나중에 그 분이 독신인지 궁금하여 인터넷에 검색하여 찾아봤더니 결혼하신 분이었습니다. 본인의 결혼생활이 불행했든지, 아니면 그날 아침에 부부싸움을 하고 나오셔서 그렇게 독신을 강요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설교자가 ‘아멘’이나 ‘서원’을 강요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설교를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또 여기에 아무 생각 없이 분위기에 휩쓸려 ‘아멘’이라고 화답하는 사람들도 개념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지키는 것은 당연하지만 혹시 분위기에 휩쓸려 이성을 출장 보내고 감정 충만한 멘붕상태에서 하나님께 서원한 것이 있다면 무시하셔도 됩니다. 하나님 제가 그때는 분위기에 그만 취하여 정신이 없어서 서원한 것이니 용서해달라고 회개하시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분위기에 휩쓸려 서원한 것을 지키지 않았다고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바른 이성을 가지고 현실을 정확하게 직시하고 판단하여 주님을 따르길 원하십니다.

 또 교인들의 믿음을 주관하는 방법은 교인들이 한 방향으로만 생각할 수 있도록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신학적으로 생각을 달리하는 문제들이 있을 때 담임 목사가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신학적 사고를 교인들에게도 강요합니다. 자신과 생각을 같이 하는 사람, 소위 말하는 그 분야의 전문가를 교회로 초청하여 일방적으로 교인들에게 강의를 하여 자신의 생각을 교인들에게 간접적으로 전달합니다. 이것도 성도들의 믿음을 주관하는 월권행위입니다.

 예를 들어 창조과학에 대해서도 생각을 달리하는 목회자와 교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담임 목사가 창조과학을 지지하는 입장에 있으면 일방적으로 창조과학을 옹호하는 사람만 교회에 초정하여 교인들에게 강의를 듣게 하여, 성도들의 믿음을 창조과학이 옳다는 방향으로 끌고 가려고 합니다. 저는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창조과학에 대해 반대하는 분도 초정하여 강의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창조과학에 대해 서로 생각을 달리하는 전문가를 동시에 초청하여 성도들에게 정보를 제공한 다음, 성도들 스스로 어떤 것이 성경적으로 맞는지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지금 이슈인 ‘포괄적 차별금지법’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도 기독교 안에서 입장을 달리합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해 목숨을 걸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지만,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해 찬성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도 교인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관하여 견해를 달리하는 두 전문가를 동시에 초청하여 교인들에게 듣게 한 다음 판단하도록 해야 합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은 어떤 문제점이 있어 반대하는지, 또 찬성하는 사람은 왜 찬성하는지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교인들이 균형을 가지고 판단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해야 합니다. 어느 한쪽의 입장만을 들어서는 안 됩니다. 담임 목사를 비롯한 발언권이 강한 몇몇 장로들의 입맛에 맞게 주장하는 한쪽의 사람만 초청하여 일방적으로 교인들에게 강의를 듣게 한 것은 다른 사람의 믿음을 주관하려는 잘못된 행동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느 누군가가 자신의 믿음을 지배하려고 할 때 지배를 당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올바른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스스로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자기 스스로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서 있어야 합니다. 우리 각자가 올바른 믿음에 서 있지 않으면 자신의 믿음을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스스로 믿음에 서 있지 못하면 이단들의 감언이설에 쉽게 넘어가 그들에게 믿음을 지배당할 수 있습니다.
또 이단은 아니더라도 소위 목회자나 전문가라고 말한 사람들의 일방적인 주장에 대해 무조건 따라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믿음에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올바로 설 수 있도록 믿음을 키워야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성경에 근거하여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분별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또 신학도 올바른 신학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이나 기본적인 신학지식 없이 올바른 믿음을 가진 신앙인이 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공생애 사역하실 때 많은 시간을 들여 제자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스스로 믿음에 서는 일을 게을리하면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의 믿음에 종속될 수 있습니다. 믿음의 노예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도모하는 분은 오직 예수님이시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사람의 믿음을 지배하려는 꼰대짓을 해서도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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