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와 사도세자가 비극을 맞이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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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와 사도세자가 비극을 맞이한 이유
  • 한영배 기자
  • 승인 2021.02.23 16: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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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보는 학교폭력과 교육의 중요성
영화 사도세자 극중 장면
영화 사도 극중 장면

 

배우 조병규 학폭 의혹이 물꼬를 틀고 터지자 기다렸다는듯이 연이어 학폭 의혹이 쏟아지고 있다.

허위사실일수도 있고 진실일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속된 말로 중립기어를 박아야 한다.

섣불리 판단하게 되면 마녀사냥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잘못을 했음에도 자신들의 명예와 다가올 피해를 생각해서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이라면 지금은 덮어질지 몰라도 세상에 다 드러날 것이다.

학폭 의혹이 터지면서 역사 인물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영조와 사도세자는 부자관계였으나 교육과정과 소통 부재로 인해 파멸을 가져온다.

영조는 무수리 최씨 아들로 천출의 자식이었으나 장희빈의 아들인 경종이 사망하면서 왕이 됐다. 천민의 자식인 영조는 천민 출신임에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영조의 후궁 정빈 이씨가 낳은 아들 효장세자가 10살에 사망하면서 후세를 이을 아들이 절실했다. 그때 영조가 42살 나이에 얻은 아들이 사도세자였다.

영조는 어렵게 얻은 아들 사도세자를 아꼈었는데 사도세자가 이에 보답하듯 2살이라는 나이에 60개의 한자를 쓸 정도로 똑똑했다. 이에 영조는 사도세자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는데, 사도세자가 학문이 아닌 무예에 재미가 붙어 영조의 실망을 크게 산 이후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영조는 15살 어린 사도세자에게 대리청정을 시켰다. 이때에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했는데, 이때 사도세자가 대답을 못하면 대답을 못했다고 뭐라고 하고 대답을 하면 대답을 했다고 뭐라 하니 사도세자는 훗날 왕이 될 자신들의 신하 앞에서 욕을 먹었다. 신하들도 사도세자를 무시하고 사도세자는 기가 죽고 눈치를 보게 됐다.

또한 영조는 불길한 일에만 사도세자를 데리고 다니면서 사도세자는 마음의 병이 생겼다.

이 같은 사건 말고도 여러 사건을 거치면서 사도세자는 ‘광인’이 되기에 이르렀다.

울화병에 걸리고, 의대증이 생겨 옷을 입히던 궁녀를 죽이고 내관을 이유없이 죽이는 등 약 100명의 사람을 살인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사도세자의 모습은 극단적인 표현일지 모르지만, 우리 사회에서 학교폭력, 괴롭힘 등의 일이 일어나는 것은 크게 본다면 ‘교육’이다.

아이들은 교육을 통해 세상을 알아가고 자아를 찾아가는데 이 같은 부분에 있어 잘 잡아주지 않는다면 사도세자와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

교육이 점차 변화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인성교육이 아닐까. 자신이 소중하고 귀한 사람인 것처럼 타인도 자신처럼 귀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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