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살인사건 5주기를 맞이하며 / 오정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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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살인사건 5주기를 맞이하며 / 오정란
  • 이시형기자
  • 승인 2021.05.30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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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 지난다 해도 변함없이 고정된 자리를 차지하며 위협하는 것이 있다. 사회 질서 유지라는 이름으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것, 젠더 폭력이 그것이다.

오월은 가정평화의 달이다. 가장 평화롭고 안전해야 할 공간에서 일어나는 가정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캠페인의 달이다. 이 가정폭력을 법제화하기까지에도 너무도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여전히 집안과 사회에서 여성들은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폭력 속에서 일상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5월 17일은 강남역 살인 사건이 발생한지 5주기를 맞이하는 달이다. 많은 여성이 알게 모르게 친밀한 관계에서 맞고 죽임당하고, 그리고 피해자로 있다가 잊혔지만, 이것을 여성 살인사건으로 규정하지는 못했다. 피해자가 여성인 사건들을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매일 접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젠더 불평등에서 오는 폭력으로 인식하지 못했다. 죽을 만해서, 또는 당할 만해서 또는 맞을 이유가 있어서 일어난 사건 사고로 치부하였다. 그러나 강남역 살인사건은 더는 단순한 사건으로 가두지 않으며, 여성 살인 사건을 대하는 해석을 달리했다.

‘여자이기에 죽었다’라고, 단지 운이 좋아서 살아남은 여성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언론은 이를 두고 애써 가해자인 남성의 정신 병력에 초점을 맞추고자 하였지만 이러한 프레임에 익숙한 여성들은 더는 속지 않았다.

나에게도 2016년 5월 17일을 지울 수 없는 날이다. 죽은 그녀가 나 자신일 수도 나의 딸일 수도, 가까운 친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사건이었다. 화장실에서 일어난 사건, 범인은 몇 명의 남자를 보내고 여성이 들어오자 무차별하게 살해한 사건, 여자여서 죽었다는 구호는 내가 말하고픈 구호였다. 내 목소리였다.

나는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을 계기로 자칭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오늘부터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입장을 밝히지 않는다면 더는 나도, 딸들도 그리고 여성들이 위험하다는 생각 하였다. 자기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타인을 배려하며, 조신하게 분란을 일으키지 말고, 순응하며 살아야 한다는 사회 환경 속에서 살아온 세대로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손발이 오그라들고 머리가 쭈뼛거리는 일이기도 하였다. 응당 그런 남자들의 세상이니까 음담패설이 술자리의 주메뉴였고, 눈을 돌려 어디를 보나 여성의 몸은 벗겨지고 발라지고 해체되고 분해되며 부분적으로 치부되고 맥락이 삭제되는 세상에서 살고 있음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그것은 세상은 이미 남성이라는 디볼트 값이 전제되어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

무지가 나를 어쩌면 편안하게 살게 했는지도 모른다. 여성의 몸으로 산다는 것은 순간마다 대상화되며 평가되는 그 가혹한 시선에서 ‘기분이 나쁘네’라는 정도의 감정으로 축소했다. 애써 외면하며 지냈다. 맞받아치거나 그 순간을 회피하며 묘면 했던 기억들이 ‘오늘부터 페미니스트야’라고 자기 선언을 하는 순간 그 많은 기분 나빴던 기억의 베일이 벗겨지면서 명쾌하게 정리되었다.

그래서 나에게는 5월 17일이 기념일이 되었다. 기념하면 잊히지 않는다.

여성들은 재난 때문에 죽는 게 아니라고, 젠더가 여성의 삶을 어떻게 제한하는지를 고려하지 않는 사회 때문에 죽는 것이라고 모린 포럼은 말한다.

여성의 안전은 여성의 목숨은 여전히 여성이 조심해야 할 몫으로 남아있다. 강남역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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