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에 다시 피는 킬링필드의 야생화(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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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에 다시 피는 킬링필드의 야생화(3)
  • 드림업뉴스
  • 승인 2021.12.02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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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에 이어)

                                                                       임래청 목사(캄보디아 선교사)

제가 사역하는 시엠립은 앙코르와트가 있는 도시입니다. 12~13세기 동안 두 왕이 통치하는 동안 번성했습니다. 태양의 수호자로 알려진 수리야바르만 2세는 ‘도시의 사원’ 앙코르와트를 건설했습니다.

당시는 타이 영토까지 세력을 떨쳤지요. 앙코르와트 유적지에 관해 얘기하자면 많은 시간이 필요해요. 사원을 의미 있게 보려면 3생(전생, 현생, 내생)을 거쳐야 한다는군요, 1층은 미물계, 2층은 인간계, 3층은 천상계를 상징합니다. 현재 앙코르와트 유적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직접 보시게 되면 캄보디아 민족들이 얼마나 강력한 민족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1992년 2월에 킬링필드의 땅에 유엔 평화유지군이 들어왔습니다. 이때 새 헌법에 세워지고 불교가 국교로 정했습니다. 그러나 종교의 자유는 보장된 나라입니다.

1993년 1월에 한국의 첫 장로교 선교사가 복음을 들고 들어왔습니다. 현재는 캄보디아 선교회 등록된 선교사 수와 등록하지 않고 선교사라고 활동하는 분들이 대략 2000명이 넘습니다. 척박한 이 땅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들이 수를 파악할 수 없이 많아요.

현재의 캄보디아 기독교 인구는 20만 명을 넘지 않고 세워진 교회들도 대부분 미자립 교회고 선교사들의 손길이 있어야 하는 현실입니다. 기독교 인구는 복음이 들어온 이래 전체인구의 1.25% 입니다. 아직도 복음이 낙후된 나라이면서 복음의 불모지입니다.

캄보디아 근대사는 아픔과 고난의 역사를 가진 비극의 나라입니다. 킬링필드의 뜻은 1970년 중반 캄보디아에서 폴 포드(Pol Pot)정권이 이끄는 크메르루주(Khmer Rouge)가 캄보디아를 공산화한 후 반대세력 특히 지식인과 성직자, 소수민족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사건입니다.

인간이 얼마나 추악하고 악한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사건이지요. 전체인구의 1/3이 죽임을 당했다고 하더군요. 킬링필드(Killing Fields)의 뜻은 ‘죽음의 들판’이라는 뜻입니다. 1만7000명의 시신을 매장한 수도 프놈펜 근교의 쯔앙아익(Cheung Ek) 외에도 캄보디아 전국에서 2만여 개의 집단 매장지가 발견되었습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끔찍한 일이지요.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에는 세계 각국, 특히 유럽과 한국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는 도시였습니다. 지금은 중국사람들이 많이 오고 상권도 중국사람들이 대부분 차지했습니다. 캄보디아의 3년은 짧지만, 저에게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18년 동안 전 세계 구석구석 선교지를 순회하며 사역한 경험이 있어서 3년 동안은 무슨 사역을 해야 하는지 정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조금은 답답한 시간이라고 할 수 있지만 확실하게 마음을 때리는 선교의 모형이 떠 올랐습니다.

어린이 중심으로 하는 사역은 완전히 손을 놓고 청소년들과 청년들 사역을 해야 캄보디아에 희망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왜냐면 먼저 터전을 잡고 사역하는 선교사들과 같은 사역은 하지 않는다는 것을 한국을 떠나 오면서 마음속으로 다짐을 했습니다.

약 10여 년이 전 일입니다. 동유럽의 작은 나라인데 몇 분의 선교사들이 들어와 함께 사역하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한국으로 돌아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잘 모르는 선교사로부터 문자가 왔습니다. 꼭 자기가 사역하는 도시에 올 것인가 물어보더군요.

그러면서 이미 선교사 20여 가정이 들어와 사역하는데 선교사 없는 나라로 가면 좋겠다고 좀 심하게 말하더군요, 다시 가보고 싶은 나라지만 그 뒤로는 그 나라에 대한 복음의 비전은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는 제 마음속에 늘 선교사들과 같은 사역은 가능하면 하지 않고 새로운 전도사역을 할 것이라고 다짐을 해 왔던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에서 선교학(Th. M) 마지막 학기에 공부하면서 확실하게 새로운 선교에 대한 비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캄보디아에 도착해서 첫해는 목사가 없는 현지인 교회를 돌보며 예배하였습니다, 1년 동안 함께 예배드리며 캄보디아 사람들을 알아갔습니다. 그리고 시엠립에서 크게 마사지업을 운영하는 한인교회 집사로부터 마사지사들의 어린 자녀들을 매주 토요일마다 약 2시간씩 돌봐주며 찬양과 성경 말씀을 가르쳐주면 좋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15명 정도를 몇 개월 동안 매주 토요일마다 돌보며 어린이 사역에 대한 비전을 보았습니다. 지금은 COVID-19로 인하여 만나지 못해 사역을 중단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중에 ‘청소년과 청년들이 마음껏 주님께 예배드리며 찬양을 올려드리는 날이 오기를 만들자’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시내 중심가에 청소년들이 와서 한글과 공예를 배울 수 있는 센터를 임대했습니다. 코로나로 인하여 임대료가 많이 내려간 상황이고 건물 자체가 교회로, 유치원으로, 공예학교로 활용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디모데 비전센터’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올 6월까지만 해도 한글을 배우려는 학생들이 8명이 왔습니다. 1개월이 지날 무렵 도시가 코로나로 인하여 락다운이 되었어요, 정부에서 예배와 어떠한 모임도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한글을 배우는 청소년들에게 코로나가 진정되면 다시 만나자고 약속을 하고 마지막 수업이 있던 날 떡볶이 찬지를 열어주었습니다.

때 아주 섭섭하더군요. 그런데 지금 상황은 놀랍습니다. ZOOM으로 한글을 배우는 학생들이 새벽반, 저년 반으로 나누어 30명입니다. 3주 전 디모데 비전센터에서 ZOOM으로 한글을 배우는 30명 전체 학생들과 함께 앙코르와트로 자전거 하이킹을 다녀왔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학생들이 이렇게 온, 오프라인으로 디모데 비전센터로 모이고 있다는 것은 아주 고무적입니다.

제 선교의 꿈은 청소년과 청년들이 매주 센터에 나와 하나님께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먹을 것을 주고 필요한 것들을 나누어 주는 사역은 NGO가 많이 들어와 있어서 그 일들을 잘 감당하고 있습니다. 디모데 비전센터에서는 성경 말씀으로 변화시켜 사역자들로 만드는 일입니다. 그래서 열두 명의 제자를 저희 부부가 캄보디아 땅을 어떤 이유로 떠나기 전에 키워내자는 것입니다.

교회에 많은 인원이 나와 예배드리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열두 명의 디모데 사역자들이 앞으로 시엠립과 캄보디아에서 영향력이 있는 무형의 교회 모형이 될 것입니다. 교회에서 복음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예배에 참석하는 눈먼 자들이 아닌 구원의 감격으로 예배를 드리는 열두 명의 제자를 길러 내는 일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 디모데 비전센터가 운영될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교회는 건물이 아니고, 모여 예배드리는 곳이 예배처소라 하면서도 교회 건물에 많은 제정과 힘을 들입니다. 그러나 저희 부부는 가방 4개만 이끌고 시엠립에 도착했습니다. 통장에는 30만 원 정도 있었어요. 저희 부부가 선교사로 떠난다고 하니 노회 목사님들이 오셔서 파송 예배를 드리시고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귀한 선교헌금 모아 주셨습니다.

캄보디아로 떠나기 전 주일날 제 가족이 세례를 받았던 개포동의 남서울중앙교회(여찬근 목사)에서 가서 피종진 원로목사님과 담임 목사님께 인사를 드리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사모가 20년 동안 교사로 섬기면서 예배를 드렸던 교회입니다. 예배를 마치고 전 교인들이 파송의 노래를 부르며 백만 원의 큰 선교헌금을 주셨어요. 그게 전 재산이었습니다.

사실 새로운 선교의 도전입니다. 교회 건물이 없지만 많은 청소년이 매주 뜨겁게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광경을 상상합니다. 살아서 움직이는 교회를 꿈꾸고 있습니다. 선교사이기 때문에 당연히 교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예쁘게 건축한 교회들을 보면 부러워요. 그러나 현지인들이 간절히 자기들도 예배처소가 있어야 한다고 할 때 제 뒤를 이어서 사역할 선교사와 기도하면서 그 문제를 의논할 것입니다. 12명의 디모데 같은 청년들을 발굴하여 훈련 시켜 건물이 없는 움직이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 최종 목적입니다. 마음 아프지만 전 세계를 다니면서 선교지에 세워진 교회들이 세월이 지나고 문이 닫혀있는 것을 종종 보았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우리가 언젠가 떠나도 하나님께 진정으로 살아있는 예배를 드리는, 무형의 교회를 세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요. 교회 밖의 교회를 세우는 것이 저와 아내의 목적입니다. 작은 소망이 있다면 12명의 디모데 사역자들을 키우는 데 1명의 학생이 사역자로 세워질 때까지 도와주실 분들이 계시면 디모데 비전센터 선교의 동역자로 연락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한국에 머무는 시간이 짧지만, 전도 목적으로 목공예와 재봉 등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립국어원에서 발급하는 한국어 교원 자격증도 따려고 2년 전부터 온라인으로 공부했습니다. 이제 실습만 남았어요. 많이 힘든 시간이지만 12월 하순 캄보디아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열심히 배우며 공부하고 있습니다.

저희 부부의 영성관리는 매일 성경을 10장씩 읽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하지 않으면 간섭하는 사람들이 없어서 영적으로 힘들어집니다. 창세기부터 계속 읽는데 지난 4월부터는 깐냐와 함께 성경 읽기 시작했어요. 지금까지 요한복음 10장까지 읽었습니다. 깐냐가 한국어 성경을 또박또박 참 잘 읽어요. 캄보디아에 있을 때는 센터에서 매일 읽었지만, 지금은 매일 ZOOM으로 약속된 시간에 만나 읽고 있습니다. 이제 곧 성경 통독 1 독을 마칠 것입니다. 캄보디아 사람들이 성경 1 독을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입니다. 그렇지만 깐냐는 늘 성경의 말씀을 사모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읽어요. 참 귀한 학생입니다.

디모데 비전센터에 나오는 학생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힘들게 공부하며 살아가는 학생들이 많아요. 그러나 ‘킬링필드에 다시 피는 야생화’처럼 학생들의 아름다운 미소와 웃음소리가 활짝 울려 퍼지며, 진정으로 하나님을 스스로 찬양하는 날이 오기를 기도하며 꿈을 꾸고 있답니다.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캄보디아 학생들과 청년들이 많이 보고 싶답니다. 한국의 사랑하는 가족들과 다시 헤어짐이 아프지만, 주님과 한국교회와 성도들에게 받은 그 큰 사랑을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주님이 부르시는 날까지 전해줘야 하잖아요.

                                        캄보디아 시엠립에서 사역하고 있는 임래청, 신복남 선교사

                                                        e-mail: limrc@hanmail.net 카카오톡: limrc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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