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저 주는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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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저 주는 운동
  • 김명현 기자
  • 승인 2022.08.02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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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용한 (옥수중앙)

요즘 사람들은 세태의 혼란을 틈타 저마다 욕심 채우기와 자기 몫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곪아 터진 피고름과 같은 현상들이 곳곳에서 나타나 온 나라가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정치, 경제, 사회, 교육, 종교, 어느 곳 하나 성한 곳이 없다. 곪은 곳은 짜내거나 수술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게 된다.  

탐욕과 이기심에서 벗어나는 일은 마치 우리 사회의 코로나 바이러스를 죽이는 것과 같이 중요한 일이다. 서로가 서로의 것을 빼앗는 이기적인 공동체에서 서로가 서로의 것을 나누어 주는 나눔의 공동체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여기에 우리 사회 위기 탈출의 길이 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택하여 세상에 보내실 때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마 10:8)는 말씀이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일으켜야 할 운동이 여기 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거저 주는 운동’이다. 한 번의 미소와 한 잔의 냉수에서 시작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주님의 심장으로, 따뜻한 가슴으로 거저 주는 일이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이타적 삶을 사셨다. 작게는 가까운 이웃이나 가족을 위해, 크게는 온 인류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사셨다. 그는 세상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을 위하여 사셨다. 그는 무소유자로 사셨다. 집 한 칸이 없었고 남겨줄 유산도 없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무소유의 사람이요,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요구하거나 주장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리고 철저하게 자기를 공개하는 사람이요 자기를 내어 주는 사람이다. 예수님은 그러한 그의 삶을 바탕으로 구원의 실제를 보여 주셨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특별히 목사와 장로 등 교회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무소유의 삶을 본받아야 한다. 동시에 세상을 외면하고 살기에는 우리의 신앙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가 걸어야 할 오직 한 가지 길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삶을 세상에 보여주는 것이다. 

그 첫째는 가정에서 거저 주는 삶을 실천하는 길이다. 남편은 아내나 가족에게 돈을 벌어다 주는 가장으로서의 공로를 내세우기보다는 무익한 종의 모습으로 가정을 섬겨야 한다. 아내는 수고의 대가를 주장하거나 요구하지 않는, 겸허한 여인상을 추구해야 한다. 자녀들에게도 가치관을 심어줌으로써 진정으로 섬기는 나눔의 공동체를 어려서부터 체험하도록 해야 한다. 가족 단위로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돕고 섬기는 훈련이 필요하다.

둘째, 교회 안에서의 거저 주는 삶의 훈련이다. 교회 안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다양한 봉사가 있다. 그 일이 생계를 위한 직업이 아닌 한 그것은 모든 부분에서 자발적인 헌신이 뒤따르는 일이다. 무보수로 일하는 경우 더욱 더 예민한 겸손과 지혜가 필요하다.

셋째,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거저 주는 삶을 실천해야 한다. 교회는 이 세상을 향해 적극적으로 거저 주는 삶을 계획하고 설계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은사에 따라 고아원, 양로원, 모자원, 그리고 작은 이웃들에게 자신의 시간과 은사를 나누어야 한다.

달동네였던 우리 교회가 실천했던, 세상을 향한 작은 나눔들이 오늘에 와서는 세상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주머니를 열었고, 3500명의 독거노인들의 고독사를 방지하는 ‘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우유 배달’의 후원자들이 되었다. 이런 운동이 곧 사회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되며, 따뜻한 마음을 갖게 하며, 봉사와 희생과 헌신의 참된 가치를 알게 하는 계기가 된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하나님이나 부모, 이 나라로부터 받은 은혜와 복들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을 자신의 이익과 명예와 탐욕을 위해 사용되는 도구로 삼아서는 안 된다.

특별히 목회자의 길에서 더욱 그렇다. 철저하게 주는 삶이요, 이용 당하는 삶이어야 한다. 소유는 더 큰 소유를 요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결코 소유가 존재를 의미 있게 하지 못한다. 우리는 소유의 축적보다는 값지게 희생하고 사용되는 원리를 배워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를 실천하는 ‘거저 주는 운동’은 전도의 방편을 넘어 오늘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고 살리는 원동력이다. ‘거저 주는 운동’으로 세상에 희망을 선사하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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