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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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힘
  • 김명현 기자
  • 승인 2022.08.1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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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고 일에 몰두했던 때가 있었다. 해결되지 못한 일이 있으면 밤을 지새우는 일이 허다했다. 그때는 그래도 삼십 대였으니까 혈과 근육이 민첩했다. 일을 끝낸 후 며칠 동안 몸을 쉬게 하면 흐트러진 몸의 균형은 금세 제자리를 찾았다.     

그런데 지금의 몸은 다르게 반응한다. 몸의 신호를 무시하면 몸의 이곳저곳에서 빨간 불이 켜진다. 약을 먹어도 빨간 불의 열기는 사라질 기미가 없다. 최대한의 방법을 동원해서 빨간 불을 끄려고 하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다. 무한한 노력의 결과로 불을 모두 제압했다고 착각할 때가 더 위험하다. 어느 후미진 곳에서의 불씨는 더 강하기 때문이다. 정신적 불안증이 그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의 건강은 자신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방법을 알고 있으면서도 건강을 지켜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우리가 지금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얼마 전에는 페이스북에서 권영해 선생님의 포스팅(충효의 고향 김천)을 읽고 불현듯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나무 잎이 더 무성해지기 전에 부모님 산소를 둘러보면 얼마나 마음이 편해질까. 하루만이라도 여행의 힘을 빌리고 싶어졌다. 이심전심이었을까. 때마침 남편의 권유로 하동의 화개에 가기로 했다. 하동 가는 길은 언제나 설렌다. 이제는 그리운 분의 얼굴을 뵐 수 없지만 아버지의 산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여행할 목적지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산들이 장관이다. 나무들의 봉우리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다. 문득 강미영 시인의 詩 ‘브로콜리 마음과 당신의 마음’ 이 생각났다. 시인의 심성만큼이나 봄산은 깊고 푸르다. 봄볕을 머금은 브로콜리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것 같다. 어느 것은 색이 짙고 어느 것은 색이 옅었다. 너는 분명 떡갈나무일 것이고 너는 분명 상수리나무일 것이고 너는 분명 산벚나무일 거야. 너는 그래서 착하고 너는 그래서 슬프고... 이런저런 생각이 이야기를 끌고 가서 어느 지점에는 강물과 구름이 되다 보니 금세 화개에 도착했다. 고향땅 화개의 냇물이 반갑게 악수를 청해왔다. 

꽃이 핀다고 해서 화개(花開)라고 했던가. 나 또한 어렸을 때부터 벚꽃이 피는 곳이라고 해서 화개(花開)인 줄 알았다. 그런데 쌍계사 창건 설화(지리산 아래 눈 속에 칡꽃이 핀 자리가 쌍계사)와 관련이 있다고 하는 어느 신문기사를 읽고 화개(花開)를 더 자세히 알게 됐다. 몇 년 전에는 화개초등학교 왕성분교장 앞에서 수령 500년 푸조나무(경상남도 기념물 제123호)를 만나고 큰 감동을 받았었다. 내가 태어난 고향이지만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그렇다고 부끄러운 것은 아니다. 모를 때가 기회다. 고향을 찾아갈 때마다 하나하나 알아 가면 되니까.

부모님의 산소는 내가 어렸을 때 감자밭이 있던 야산이었다. 두 분이 감자밭으로 일을 하러 가실 때는 무서움에 떨었다. 옆집 아이들과 같이 있을 때는 괜찮았지만 홀로 집에 있을 때는 적막함이 공포였다. 아래채 큰 마루에 앉아 놀다가 공포의 모자를 쓴 이상한 것들이 내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면 무작정 골목길을 내달렸다. 감자밭이 보이는 냇가로 달려갔다. 멀리 감자밭에서 어머니 모습이 보이면 그때야 안심을 하고 달리기를 멈췄다. 냇가에서 소꿉놀이를 하면서 어머니가 오실 때까지 기다렸었다. 이젠 내가 사랑했던 두 분은 나란히 감자밭에 계신다. 봉분 두 개가 다정하다.    

목통마을은 많이 달라졌다. 나의 생가도 별장 같은 형태로 바뀌었다. 나의 유년의 꿈, 키 큰 감나무도 사라졌다. 그나마 내가 기억하고 있는 집, 두 곳의 집에서 옛날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얕은 우물이 있는 집과 넓은 마당이 있는 집이다. 마당이 넓은 집은 집주인이 후덕해서인지 항상 사람들이 붐볐던 것으로 알고 있다. 동네 언니, 친구들과 편을 갈라서 줄넘기를 했었다. 모두 맨발로 뛰었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도 나눠 먹었던 기억도 떠오른다. 그때 마당의 흙은 콩고물처럼 부드러웠다. 그러나 지금의 마당은 모던하다. 오르막 골목도 모던하고 내리막 골목도 시멘트 길이다. 동네 사람들 표정도 모던하다.   

목통마을에서 화개장터까지는 꽤 먼 거리다. 차가 없었던 시절에는 이 먼 거리를 어떻게 걸어 다녔을까. 보부상들이 다녔던 길이 얼마나 험난하고 고단했을까. 아버지의 산에 올랐다가 내려오면서 나에게 던지는 혼잣말, 이제 버릇이 됐다. 옛사람들의 어려움이 있었기에 지금의 길로 발전했을 것이다. 이번 역시도 고향의 산을 바라보면서 화개장터를 둘러보면서 마음과 몸이 힐링됐다. 또다시 내 마음의 냇물에 희망의 조각배 하나 띄운다. 더 열심히 긍정적으로 나만의 품을 넓혀 가리라, 저 하동 범왕리 푸조나무처럼. 

 

이강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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