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교회는 어떠한가 - 김하연
상태바
이런 교회는 어떠한가 - 김하연
  • 김명현 기자
  • 승인 2022.08.22 09: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왕에 눈을 여는 김에 조금만 더 열었으면 좋겠다. 목사에 관한 이야기이다.

올해 대한민국 굴지의 장로교단의 신학대학원 입학생 모집이 약속이나 한 듯, 미달이다. 그리고 역시 앞으로 신학대학원생 모집이 점점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난 수년간 계속해서 마이너스 곡선이었기 때문이다.

목사는 교회의 항존직이다. 즉 교회에 반드시 있어야 할 직분이다. 그들은 전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설교할 사명을 가진 사람들이요, 목사가 없는 교회는 생각해보기도 힘들다. 목사가 없는 교회가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런데 이제 목사가 되려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현상은 목회의 생태계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코로나 19로 인해서 지난 2년간 만개 이상의 교회가 문을 닫았다고 하는데 다른 말로 하면 1만 명 이상의 목사가 졸지에 실업자가 되어서 삶의 현장으로 내몰렸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들은 삶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 지금 무슨 일이라도 해야 하지만 왠지 각 교단에서 ‘목사의 이중직’(?)이 대체로 합법적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는 지경이라서 조금은 위축되고 조금은 음성적으로 자기의 삶(?)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신학대학원 입학 때에 비상한 비전과 멋진 목회를 왜 꿈꾸지 않았었겠는가?

그러나 소위 ‘목회 생태계’는 그리 녹록지 않은 것이다. 인구감소에, 전도는 안 되고, 기독교에 대한 사회적 안목은 냉소적이다. 게다가 이웃교회들도 졸지에 경쟁적으로 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목사의 이중직’이라는 말도 좀 어폐가 있다. 뭔가 조금은 부정적인 뉘앙스로 비추어 지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도 강력한 설교자요 성경기록자요 교리를 정형화 해 나간 사도 바울도 ‘텐트 메이커’였다.

그런데 아무도 그의 이중직(?)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실 바울은 복음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각오로 살았던 사람이 아닌가?

이미 이 문제는 현실적으로 각 교단에서도 논의되고 있다.

기성총회는 미래전략을 위한 설문조사에서 목사의 이중직을 허용하자는 의견이 81.6%였다고 한다(기독교보 5. 28. 15면, 전면허용 35.9%, 제한허용 45.7%).

각 교단이 우려하는 것은 소위 ‘목사의 이중직’을 허용하게 되면 목회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칫하다가는 목사가 세상의 물욕에 매여서 전반적으로 교회의 질이 떨어질 것에 대한 것이다. 이것은 지극히 합당한 우려이다.

그러나 그런 우려라면 지금의 전통적인 목회 패턴에서도 마찬가지로 발생한다. 목회에만 매여있다고 시험에 들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인식 때문에 여러 어려운 환경에서도 어찌하던지 목회를 해 보려고 하는 이들을 그늘로 내모는 결과 밖에는 되지 않는 것이다.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에게 초점을 맞추고 나아가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는가? 실제로 외국의 많은 교회는 목회자가 주중에 다른 일을 한다.

필자가 짧은 시간 출석했던 유대인 교회에도 교회 리더인 목사가 주중에 컴퓨터 가게를 운영하고 주말에는 예루살렘의 앵글리칸 스쿨을 몇 시간 빌려 교회를 이끄는 모습을 보았다.

그 목사님은 누구보다도 신실한 중심으로 목회했고, 그의 일상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은 오히려 교회를 운영하는 데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가 교인의 숫자나 재정상태에 내몰려 목회에 위축되는 일은 전혀 볼 수 없었다.

큰 교회 혹은 교회의 재정이 넉넉해서 목회자들의 생활을 충분히 뒷받침해 줄 수 있는 교회에는 ‘목사의 이중직’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 그런 교회의 목회자는 전적으로 오로지 목회에 전념해야 할 것이다.

본 논고는 그런 이상적인 교회에서의 목회패턴을 바꾸자는 뜻은 결코 아니다. 혹시, 총회적으로 각 노회가 그 노회 소속 목회자의 생활비를 전적으로 책임지는 제도가 만들어지기라도 할 수 있으면 문제의 양상은 많이 달라질 수도 있다. 이마저 현실적으로는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적절한 여건을 갖추지 못한 교회에서 사역하는 목회자들을 위하여 더 안목을 열고 ‘이중직 허용’뿐만 아니라 인식을 바꾸어서 얼마든지 어깨를 펴고 당당히 목회를 해 나갈 수 있는 목회 토양이 준비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자신감 있게 목회할 수 있다.

이런 인식의 변화는 편협된 교회론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 있다. 하드웨어 중심의 교회, 보장된 틀 안에서의 목회가 아니라 순전히 복음을 위한 전투적인 살아있는 교회가 될 수있다.

생활에 대한 두려움이나 염려가 없이, 위축됨도 없이 다섯 명의 영혼을 위해서도 처음 하나님의 부르신 그 부름의 순수성을 쫓아서 담대하게 최선을 다해서 말씀을 가르치고 영혼을 돌아볼 수 있게 된다.

지금은 ‘작은교회 운동’을 하는 시대이다. 작지만 순수한 교회가 거대한 교회, 성장주의 교회 사상에 빠져서 자칫 영적교만에 빠지기 쉬운 그런 교회보다는 주님 보시기에 훨씬 귀하다. 그런데 우리의 편협한 생각들이 지금 이 순수한 교회운동을 얼마든지 막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각 교단의 총회가 다가온다. 이제 눈을 열어야 한다. 사람들의 보기에 멋지고 폼나는 것, 세상의 경제원리에 상당히 편승하는 가치관에서 벗어나서 이제는 순수 그 자체만을 쫓아서 달려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의 순수함도 무너지게 될 뿐 아니라, 결국은 모두가 다 자멸하고 말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