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우가 침묵한 것 / 안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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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우가 침묵한 것 / 안희제
  • 김명현 기자
  • 승인 2022.08.29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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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영 내내 많은 사랑을 받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종영했다. ‘한 번 본 것이면 무엇이든 기억하는 천재 자폐인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한 이 드라마는 주인공 외에도 주변 인물들의 매력과 다양한 주제의식으로 큰 인기를 끌었고, 여러 분야의 논쟁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드라마란 애초에 사람들의 인기를 끌고 사랑을 받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 목표인 매체이기에, 작품 자체에 더 바라는 것은 크게 없다. 다만, 이 드라마가 어떻게 그만큼의 사랑을 받았고, 그 배경에 어떤 사회의 모습이 있는지, 그리고 매력을 위해 드라마가 희생시킨 것은 무엇인지 짚어보는 것은 이 작품을 더 나은 이야기들의 계기로 삼기 위해 필요한 일일 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드라마는 ‘우영우’라는 주인공을 통해 ‘장애인’을 대변하고자 했고, 이를 위해 다른 장애인들을 침묵시켰다. 그리고 이것이 납득되도록 하기 위해 우영우라는 캐릭터가 이만큼이나 사랑받을 수 있는 사회에 대한 질문 또한 누락시켰다. 이는 다른 장애인 인물이 등장하는 3화와 10화에서 두드러지기에, 이 두 에피소드를 중심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이를 통해 나는 이 글에서 짧게나마 이 두 가지를 관통하는 질문을 던져 보고자 한다. ‘우영우가 가진 매력의 이면에 무엇이 있는가?’

우선, 우영우의 매력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공적인 것의 누락이다. 이 드라마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면서, 때로는 법정 드라마라는 형식의 경계에 다소 실험적으로 도전하면서까지 논의가 필요한 공적인 의제들을 시청자에게 상기하는 듯하다. 이를테면, 아동 인권의 문제를 다룬 9화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법정의 문법을 깨는 ‘방구뽕’이라는 인물과 그를 따르는 어린이들을 활용함으로써 결국 법정에서 사실상 어린이 해방을 위한 시위를 벌이기까지 한다.

그런데 정작 이 드라마는 우영우가 아닌 장애인이 직접 말할 수 있도록 돕는 공적인 제도는 사실상 의도적으로 누락하고 있다. 3화에서 등장한 ‘정훈’이라는 자폐인은 살인사건의 피고인으로 법정에 섰는데,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을 활용하면 그의 진술을 조력할 수 있는 사람을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에 따라 법정에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드라마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10화에서 등장한 ‘혜영’이라는 지적장애여성의 경우 장애인 준강간 사건의 피해자로 등장하는데, 그는 수사 과정과 재판 과정 전반에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진술조력인을 요청하거나, 신뢰관계에 있는 사람의 동석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력 없이 진행된 재판에서 정훈은 ‘심신미약’으로 풀려나게 되었고, 혜영은 무죄를 받길 바란 피해자가 징역을 살게 되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린다. 드라마는 제도를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음으로써 이들의 의사를 사실상 사전에 차단해 버린 것이다.

제도적 지원은 물론 현실적으로 아직 갈 길이 멀다. 법무부로부터 자격을 인정받은 진술조력인 자체가 적을뿐더러, 있는 경우에도 아동 전문 인력인 경우가 대다수다. 그러니 제도를 도입한다고 해서 정훈과 혜영의 의사가 바로 법정에서 반영될 수도 없다. 그러나 제도의 존재를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한 번 본 것은 무엇이든 기억하는’, 게다가 학부와 로스쿨을 모두 수석으로 졸업한 천재 변호사가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와 ‘진술조력인’, ‘신뢰관계인’을 전혀 떠올리지 못한다면, 이런 설정 충돌을 현실 제도의 문제에 대한 비판적 재현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테다. 그렇게 제도에 대한 논의의 가능성도 상당 부분 사전에 차단된다.

나아가 두 에피소드는 각각 정훈과 혜영을 주인공인 영우와 오버랩시킨다. 3화에서는 ‘피고인과 같은 자폐인’이라며 영우의 변호 능력 자체를 의심하는 검사와 이를 용인하는 폭력적 재판정을 등장시킴으로써, 10화에서는 ‘비장애인 남성과 장애여성의 연애’와 이 연애를 인정하지 않는 주변인들을 등장시킴으로써 영우는 다른 장애인 인물들과 포개어진다. 그런데 다른 인물들이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제도적 조력이 언급조차 되지 않음으로써, 영우는 상당히 포괄적 범주인 ‘자폐인’ 혹은 ‘장애인’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대변할 토대를 얻는다. 실제로 그는 극중에서 사건의 당사자들을 자신과 동일시하며, 이를 ‘자폐’ 혹은 ‘장애’라는 범주로 빠르게 일반화해낸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우영우가 일반적인 사례는 아닐지언정 ‘우영우와 같은 자폐인도 존재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는데, 위와 같은 이유에서 이러한 대답은 충분할 수 없다. 우영우 캐릭터는 드라마에서 반복적으로 ‘자폐인’ 혹은 ‘장애인’을 대변하는 위치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연출이 바로 이 드라마에 대해 가해지는 ‘자폐를 현실적으로 재현하지 못했다’라는, ‘드라마’라는 매체에 대해서는 다소 부족할 수 있는 비판을 유의미한 것으로 만들어낸다.

공적인 것에 대한 이러한 누락은 우영우라는 인물의 매력을 통해 사람들에게 소화될 수 있었다. 이를 위해 드라마는 우영우가 지닌 매력의 토대에 대해 침묵한다. 우영우의 매력은 ‘천재 변호사’이기에 능력주의의 기대를 충족하는 동시에 ‘회전문도 못 통과하는 자폐여성’이기에 여성에 대한 문화적 기대를 과도하게 충족한다는 데에서 발생한다. 장애여성은 그의 실제 성적 지향과 무관하게 무성애자로 추정되기에 이성애자로 ‘교정’해주겠다는 성폭력, 즉 ‘교정강간’의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1), 능력주의(ableism)와 성차별이 동시에 작동하는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문화적 기대를 과도하게 충족”2)시키기에 과잉 성애화되기도 한다. 장애인이 자립하기 힘든 사회에서 장애가 여성의 의존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달리 표현하면, 여기서 그가 서번트 증후군이 있는 자폐인이라는 설정은 능력주의와 성차별의 교차 지점에서 ‘엄청난 천재지만 어딘지 모자라고 도움이 필요한 여성’을 매력으로 소비하는 ‘갭모에’를 만들어내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 지점을 감추기 위함일까? 드라마는 기묘한 방식으로 ‘여성’을 삭제한다. 영우의 연애뿐 아니라 혜영의 연애 또한 ‘장애여성’과 ‘비장애남성’의 연애인데, 드라마는 이를 ‘장애’의 문제로 환원한다. 여성의 삭제는 기묘하게도 여성을 동원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영우의 동료 변호사인 수연은 그것이 위험하다는 걸 알고 걱정하면서도, 클럽에 가서 술을 마시고 처음 보는 남성과 성관계를 가졌음이 암시된다. 이는 영우가 혜영에게 말한 “나쁜 남자와 사랑에 빠질 자유”에 대응되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섹슈얼리티를 경험하는지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비교는 비장애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안전, 성적 자유를 지극히 단순화하고 논외로 만들 때만 가능하다.

흰색 셔츠 위에 밝은 노란색 재킷을 걸친, 약간 컬이 들어간 검은 중단발의 수연. 소개팅 자리에서 황당한 농담을 듣고 눈이 커진다. 이후 그는 클럽으로 향한다.
이처럼 장애여성과 비장애여성의 비교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이로 나아가는 방식은 ‘여성’ 혹은 여성의 경험을 더 논의할 필요가 없이 당연한 무엇으로 만들고 삭제함으로써 가능해진다. 장애학자 김은정은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에서 “장애에만 초점을 맞추면 장애여성을 탈성화된 비여성(desexualised nonwomen)으로 만드는 배제적인 젠더 체계와 이성애 중심적 강요, 나아가 장애여성을 성애화하는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지 못”한다고 말한다.3) 그러한 문제를 제기하는 순간 우영우의 매력이 구성되는 전제 자체에 의문을 제기해야 하기 때문에, 드라마는 우영우의 매력을 지키기 위해 여성을 삭제하고 장애만을 남긴 것이다. 명백히 지적장애여성의 섹슈얼리티가 핵심 요소일 수 있었던 10화에서 혜영의 이야기가 거의 등장하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 우영우 이후, 우리에게 남은 질문들

넷플릭스에서 이 드라마의 특징으로는 “힐링, 감명을 주는, 진심 어린”이 적혀 있다. 드라마는 그에 걸맞게 ‘따뜻함’을 줄 수 있는 지점, 즉 ‘좋은 상사’나 “봄날의 햇살” 같은 ‘친구’, ‘고래 이야기를 재밌게 들어주는 남자친구’에서는 롤 모델을 보여주고자 하면서도, 공적 제도 차원에 개입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중요한 요소들을 누락하고, 사회를 감추고, 다른 장애인을 침묵시킨다. 법과 일터라는 공적인 배경에서 장애를 다루면서도 우영우의 노동을 지원하는 직원과 우영우 사이에 연애 관계를 만들어서 구체적인 노동 조건의 문제로 뻗어나갈 수 있는 이야기를 사적인 관계로 환원하고 소비하기 편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는 공적인 것의 누락과도 연장선에 있다.

큰 인기를 끌고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이곳저곳에서 공론장을 이끌어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드라마로서 꽤 성공적이다. 그리고 그 성공, 우영우가 가진 매력의 이면에는 누락과 침묵이 있었다. 때로 이 드라마는 오직 ‘장애’만을 부각하기 위해 다른 문제들에 침묵하고, 심지어는 제도적 조력이라는 공적 층위를 누락시킴으로써 다른 장애인들을 침묵시키고, 이를 통해 주인공만을 빛내고 장애인의 대변인으로 삼으려 한다. 우영우의 매력은 사실 그만큼 기만적이기도 했다.

그래서 조금 더 나은 논의를 위해 이 지점에서 우리는 고민해야 할 것이다. 우리를 둘러싼 어떤 연결들이 장애인의 문제를 오직 장애, 장애의 특성으로만 환원하고, 공적인 제도의 문제를 사적인 관계의 문제로 축소하는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제도는 어떤 방식으로 실행되고, 또 바뀌어야 하는가? 문제의 환원과 축소는 어떻게 다른 장애인들을 침묵시키면서 우영우만을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내는가? 장애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가 ‘여성’을 삭제함으로써 성립하기도 할 때, 우리가 이 드라마에서 포착해야 하는 것은 ‘좋은 관계들’인가, 아니면 누락된 것들인가? 누락과 침묵이 매력으로 작동하는 사회에서, 우영우 이후에 우리에게는 많은 질문이 남아 있다. 더 나은 작품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시청자들의 몫이 중요해지는 시점이다.

*                               *                               *
1) 김은정,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 강진경·강진영 옮김, 후마니타스, 2022, 42쪽

2) 수전 웬델, 『거부당한 몸』, 강진영·김은정·황지성 옮김, 그린비, 2013, 126쪽

3) 김은정, 앞의 책, 49쪽

안희제의 말 많은 경계인

관해기(증상이 일정 정도 가라앉아 통증이 거의 없는 시기)의 만성질환자. 문화인류학을 공부하며, 질병과 장애를 중심으로 사회를 고민하려 노력한다. 책 《난치의 상상력》, 《식물의 시간》, 《과학잡지 에피: 16호-장애와 테크놀로지》(공저), 《아픈 몸, 무대에 서다》(공저), 《몸이 말이 될 때》(공저)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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